1. 서론
가정폭력은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가족연구의 관심 영역이다. 초기 가족연구자들은 가정폭력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랫동안 가정폭력이 연구대상으로써 학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 것은, 과거에 없던 가정폭력이 최근에 갑자기 나타났기 때문은 아니다. 단지 이 주제를 최근에 와서 문제로 인식하고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조정문 외 2007: 343).
사회에는 가정폭력이 만연하고 이를 위한 뚜렷한 해결책은 없다는 점에서 이 주제는 매우 중요하다. 가정폭력의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심지어 서구사회의 고대 법률은 아내학대를 사회적으로 인정하였는데, 로마 법률은 아내를 죽일 수 있는 권한을 남편에게 부여하기도 하였다. 이는 아내에 대한 폭력행사를 아내에 대한 합법적인 통제수단으로 간주하였을 뿐, 사회문제로는 간주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조정문 외 2007: 344 ). 물론 필요 이상으로 폭력을 사용하는 남편에게는 사회적 제재가 있었겠지만 원칙적으로 남편에게 폭력적 통제를 가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되었다. 자녀학대 역시 아내학대만큼이나 그 역사가 오래되었지만 사회문제로 취급된 것은 최근이다. 아동을 하나의 인격을 가진 존재로 인정하기 시작한 것은 근대 이후에나 시작되었기 때문이다(이시재 1988: Abbot et al. 1990: 84-86). 이전에는 자녀를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 인격체라기보다는 부모 특히 부권에 귀속되어 있는 존재로 간주하고, 부모의 부속물로 취급하는 사고방식이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다.
위와 같은 성향의 가정폭력이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이유를 저자는 ‘가정폭력을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또한 이것이 남에게 노출되는 것을 창피하게 여기기 때문에 공식적 자료를 통해 가정폭력의 정도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기(조정문 외 2007: 346)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와 같은 현상은 가정폭력을 전통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에서 기인하는데, 이 관점에서 바라본 가정폭력은 아주 사소한 문제로 취급된다. 발생한 가정폭력 자체가 매우 예외적인 현상으로 간주되므로, 이것이 가족 구성원들 간의 역할분담 방식과 권위 관계와 같은 우리사회의 가족제도가 지닌 근본적인 잘못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가족구성원의 잘못이나 실수로 가정폭력이 일어난다고 판단하는 것이다(조정문 외 2007: 367).
가정폭력에 대한 전통적인 관점이 가정폭력을 소홀히 다루는 또 다른 이유는 가정을 사적 공간, 즉 개인의 사생활로만 간주하는 데 있다. 설사 가정 내에서 폭력이 발생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문제일 뿐 사회나 공공기관이 간섭할 성질의 것은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 가정폭력에 무관심한 것이다. 그래서 가족 구성원 외부의 인물이 이를 발견한다 하더라도 개인적 문제나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거나, 내가 아닌 타인이 속한 가족 범위의 사항을 간섭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다. 가정폭력 피해자가 폭력 사실을 타인에게 알리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것 역시 이와 같은 맥락이다(조정문 외 2007: 369).
현대사회에서조차 많은 부분 은폐되어 있는 가정폭력에 주목하여, 이에 대한 사항을 덮어둘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인지하고 해결하고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학술적 연구뿐 아니라, 사회복지 차원에서 가정 폭력에 대한 법적 규제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가정 폭력의 희생자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도 필요한 노력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조정문 외 2007: 372).
2. 본론
가정폭력하면 보통은 아내학대만을 떠올리는 것이 흔한 일이지만, 사실 이는 아동학대, 근친상간(의붓아버지나 친척 및 기타 가족원에 의한 성폭행), 배우자학대(아내구타 혹은 남편구타), 형제학대 그리고 노인 ·부모학대 등의 여러 가지를 포함한다. 하지만 이들 중 가장 많이 연구되는 분야가 아내학대와 아동학대 이므로 본고는 이 두 가지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조정문 외 2007: 346).
먼저 아내구타의 실태는 아내구타의 정의와 연구표본의 선정방식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먼저 아내구타에 대한 정의는 학자마다 다르다. 먼저 김광일(1987: 140-177)은 첫째, 구타가 시작된 때부터 2년 이상 경과된-즉 2년 이상 아내구타가 지속된- 경우와 둘째, 적어도 총 10회 이상 구타를 당한 경우를 아내구타로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부부가 서로 폭행을 주고받는 경우나 부부싸움 도중 감정 폭발로 인해 남편이 아내를 구타한 경우에는, 이런 부부싸움의 빈도가 전체 부부싸움의 절반 이하일 경우 이를 아내구타로 간주하지 않았다. 폭행을 심각성의 수준에 따라 나눈 스트라우스(Straus, 1974, 1978)의 분류에 따르면, M까지의 행위는 아내구타로 간주하지 않았다. 이렇듯 아내구타를 엄격하게 정의하는 것은 우발적이고 일회적인 구타를 배제하고 습관적이고 병적인 아내구타만을 연구대상으로 삼기 위해서였다.
통계적으로 파악한 아내구타의 실태조사 결과는 여러 연구에서 등장한다. 무작위로 표집한 208명의 기혼여성을 대상으로 조사한 연구(이화수 1984)에 따르면,<결혼 후에 남편에게 구타당한 적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전체의 42.2%였으며, <지난 1년 동안 남편에게 구타당한 일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전체의 14% 였다. 또한 한 달에 한 번 이상 일주일이 멀다 하고 구타당하는 가정주부는 100명 중 1명꼴로 존재했다. (김정옥 외 1990)의 농촌지역 조사에 따르면, 기혼여성의 51%가 지난 1년 사이에 남편에게 가벼운 폭력(스트라우스의 분류에서 N까지의 행위)을 당했으며 심한폭력(스트라우스 분류에서 N이상의 행위)의 경우에도 그 비율은 무려 10.4%에 이르렀다. 서울지역에 거주하는 기혼여성을 대상으로 한 연구로는 자료(김익기 외 1992)가 있는데, 이 조사에서 지난 1년 사이에 남편에게 가벼운 폭력(스트라우스의 분류에서 M까지의 행위)을 당한 아내의 비율은 28.4%이며, 심한 폭력(스트라우스의 분류에서 M 이상의 행위)의 경우에도 그 비율이 10.6%에 달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심한 폭력을 3회 이상 당한 경우도 4.1%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상의 자료들을 종합해 볼 때 한국의 기혼여성의 10%정도가 남편에게 심한 구타를 당한 경험이 있다고 추측할 수 있겠다.
이어 살펴볼 아동학대 또한 아내학대만큼이나 외부인에게 쉽게 노출되는 것이 아니라서 그 실태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김광일과 고복자(1987)는 서울 시내 중산층 지역과 저소득층 지역에서 각각 한 초등학교씩을 선정하여 아동구타의 발생 정도를 살펴보았다. 1,142명의 2, 4학년 아동 중에서 지난 일 년간 가족에게 매 맞은 일이 있는가에 대해 알아본 결과, 있다고 응답한 아동은 756명으로 무려 66.2%에 달했다. 그러나 지난 일 년 사이에 매 맞은 경험이 있다고 해서 모두가 습관적으로 구타당하는 아동이라고는 볼 수는 없다. 그래서 매 맞은 경험이 있는 아동 중에서 한 달 평균 1회 이상 주먹으로 맞거나, 발로 차이는 것 이상의 심한 매를 맞는 경우만을 분리한 결과 그 비율은 전체 아동의 8.2%로 나타났다. 초등학교 아동을 대상으로 한 연진영 (1992: 39)의 연구에 의하면 한 달에 2-3회 또는 그 이상으로 굵은 막대기나 몽둥이로 맞는 어린이가 11%, 발에 차이거나 깨물리거나 주먹에 맞는 어린이는 9.3%가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정준 (1987)은 영세지역 새마을 유아원의 교사들을 통하여 유아원 원아들 중에서 학대 받고 있다고 판단되는 아동의 실태를 조사했다. 이 조사에 의하면 새마을 유아원에 다니는 아동 중 7.8%가 학대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비율은 김광일과 고복자의 연구에서 심하게 구타당하는 아동의 비율과 어느 정도 일치하고 있다. 미국에서 조사한 자료(Straus et al. 1980)에 의하면 한 해 동안 전체 어린이의 3%정도가 심하게 구타를 당하고 있으며, 아동기 전체 기간에 심하게 구타를 당하고 있는 아동들은 전체의 8% 정도였다(Steinmetz, 1987 : 736). 지금까지 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아내구타와 아동학대의 실태를 검토해 보았다.
이 같은 가정폭력의 원인은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개인내적 요인, 사회심리적 요인, 그리고 사회문화적 요인이 그것이다.(McKenry et al 1995: Steinmetz, 1987: 739-753). 개인 내적이론으로는 생물학적 요인, 심리적 요인이 있는데, 이 관점에서는 가정폭력의 원인을 폭행 가해자나 피해자가 지닌 생물학적·정신적 결함에서 찾는다. 그러나 가정폭력 가해자 중 이런 생물학적 결함을 가진 사람은 얼마 되지 않고, 개인의 성격이나 기질 또한 선천적으로 형성된 것이라기보다는 후천적 환경의 산물이라 보기 때문에, 문제의 출발점은 사회심리적 또는 사회문화적 요인에서 찾아야한다. 사회심리학적 이론은 폭력의 성향이 되는 요인을 개인이 관계하는 다른 사람 또는 사회와의 상호작용, 즉 사회경험에서 찾는다. 이런 사회심리적 이론에는 좌절공격이론, 사회학습이론 그리고 갈등이론 등이 있다(조정문 외 2007: 355).
먼저 좌절공격이론(frustration-aggression theory)은 인간의 공격행위를 목표 달성의 실패에서 비롯된 욕구불만의 산물로 본다(Dollard et al, 1939). 이 이론에 따르면, 개인이 스스로의 좌절과 욕구불만을 야기한 대상에게 대항할 힘이 없는 경우, 힘이 약한 제 3자에게 공격행위를 가하기도 하는데 이것이 곧 가정폭력으로 나타날 수 있다. 남성 세계에서 경험하는 대표적인 좌절은 실직과 사회적 실패이다. 남성의 권위가 약해지면 자신의 자존심을 자극하는 사소한 것에도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때로는 자신의 권위를 억지로 회복하기 위해 가정폭력을 사용하기도 한다. 아동구타에 관한 자료(김광일 외 1987)에 따르면, 심하게 매 맞는 아동의 비율은 아버지만 직업이 있고 어머니는 가정주부인 가정에서 가장 낮게 나타나며, 그 다음은 부모가 맞벌이인 경우, 부모 모두가 무직인 경우 그리고 아버지는 직업이 없고 어머니만 직업이 있는 가정의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위의 사실은 아버지가 실직 상태에 있으면서 자신의 권위를 인정받을 수 없는 가정에서 아동구타가 많다는 사실을 입증해 준다. 일반적으로 가정폭력이 중산층보다 저소득층 가정에서 많이 발생하는 것처럼, 아동 구타도 중산층 가정에서보다 저소득층 가정에서 더 빈번하게 발생한다(김광일 외 1987). 가정폭력의 유일한 원인은 사회생활에서 경험하는 욕구과절만이 아니라 남편의 가부장적 태도, 아내와 남편간의 지위불일치, 가족구성원들 간의 갈등 등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한 중산층은 그들의 가정폭력을 쉽게 은폐할 수 있는 반면 저소득층은 이를 쉽게 은폐하지 못하므로 저소득층의 가정폭력이 지나치게 과장되는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병원이나 상담소를 찾아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오히려 중산층 가정의 아내구타 비율이 저소득층 가정의 비율보다 더 높게 나타난 사실(김광일 1985 : 심재근 1987)은 이 점을 잘 말해주고 있다. 물론 병원이나 상담소를 많이 찾아오는 계층이 중산층이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왔을 수도 있으나, 이런 사실은 가정폭력이 저소득층에만 국한된 사실은 아님을 보여준다.
사회학습이론(Social learning theory)과 역할모델 이론(Role modeling theory)은 폭력행동도 다른 행동들처럼 주위에서 보고 배운 학습의 산물이라고 여긴다(Bandura 1973). 즉 성장 과정에서 부모나 중요한 타자가 폭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많이 본 어린이는 가정폭력에 둔감해질 뿐만 아니라 폭력을 문제해결의 수단으로 학습하였기 때문에 어른이 되어서도 폭력적 수단에 호소할 가능성이 높다. 많은 연구들이 가정폭력이 세대 간에 전수됨을 보여주고 있는데, 남편의 구타로 병원을 찾는 70가지 사례를 심층 분석한 연구는 아내를 구타하는 남편의 73%(50사례)가 폭력가정에서 자랐음을 보여주고 있다(김광일 1987). 그리고 김정옥 등(1990 : 22)의 연구도 어린 시절 가정에서 폭력을 많이 관찰했거나 직접 폭력을 많이 당한 경우에 자신도 가정폭력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음을 보여준다. 갈등이론(Conflict theory)은 가정폭력을 가족구성원간의 갈등의 산물로 본다(Marx et al.. 1969). 가족구성원간 갈등은 여러 요인에 의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데, 특히 상호간 가치관의 차이뿐만 아니라 부부 중 한쪽이 주도권을 행사할 때 그리고 배우자나 자녀가 자신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못할 때 빈번할 것으로 생각된다. 김정옥 등(1990)의 연구에 따르면 남편의 성격이 지배적이고 공격적일수록, 부부간의 언쟁이 높을수록, 역할갈등이 많을수록, 부부가 함께하는 활동이 적을수록, 남편의 질투심이 강할수록 그리고 남편이 가부장적 태도를 많이 가지고 있을수록 가벼운 아내구타가 많았다. 또한 시댁과의 갈등이 많을수록 심한 아내구타가 많다고 한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1992 : 100-101)의 자료에 의하면, 부부간의 원만한 대화가 없는 가구, 남편이 부인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경우, 남편이 부인을 인격적으로 무시하는 가정에서는 아내구타도 많지만 부부 상호간의 폭력사용도 빈번하다. 이 결과는 부부간의 관계가 대등하기보다는 한쪽이 일방으로 지배적일 때 가정폭력이 많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와 같이 김정옥 등의 연구와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연구는 부부간의 갈등 또는 갈등 유발 상황이 가정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제시해 주고 있다. 가정폭력의 예방을 위해서는 가족 갈등의 방지가 필요하며, 이는 결혼생활 과정에서뿐만 아니라 배우자 선택과정에서도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김광일(1987)이 연구한 70사례 중에서 비정상적인 결혼의 비율은 51사례(73%)에 달하는데,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이 20사례, 혼전 임신이 9사례, 혼전 동거가 6사례, 현 남편으로부터의 혼전 강간에 의해 결혼한 경우가 6사례, 남편의 은혜에 보답하는 뜻에서 한 결혼이 4사례 등으로 나타났다. 김광일(1987)의 연구에서 아내구타가 이루어지고 있는 가정의 2/3 정도가 배우자간의 성격, 가치관, 가정환경, 양가부모의 동의 여부 등을 고려하지 않고 결혼한 가정이라고 한다. 이들의 결혼은 살면서 모든 것이 잘 해결되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 속에서 혹은 충동적으로, 때로는 반강제적으로 이루어진 것들이다. 따라서 비정상적인 배우자 선택과정 자체가 갈등을 낳아 폭력가정을 초래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사회문화적 이론은 가정폭력의 원인을 폭력 가해자나 피해자의 개인적 상황에서 찾지 않고 그 사회의 구조와 문화에서 찾는 이론들로서 이에는 문화이론, 여권론, 마르크스주의 이론 등이 있다. 문화이론(Culture theory)은 가정폭력 가해자가 개인적으로 경험하는 긴장 및 좌절 그리고 적절한 갈등처리 방법의 미 습득과 같은 개인전 요인보다는 사회적 수준의 폭력을 용인하고 조장하는 문화에 주목한다(Wolfgang and Ferracut 1967). 이런 문화 속에서는 폭력이 문제해결의 수단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폭력 사용이 사회생활에 한정되지 않고 가정생활에까지 침투하여 가정폭력이 일어날 수 있다. 특히 한국사회에는 일본 식민지 시대의 군국주의식 학교교육의 잔재가 남아 있고 또한 오랜 동안의 군사정권 경험으로 폭력적인 군대문화가 잔존하고 있으므로, 폭력이 상당히 일상화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사회의 폭력적 문화가 가정폭력을 조장하는 부분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여권론은 가정폭력의 원인으로 아내와 자녀를 자신의 소유물로 간주하는 남성의 가부장적 의식을 주목한다. 가부장적 문화 속에서는 아내와 자식에 대한 남편의 폭력사용이 이들에 대한 통제수단으로 허용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이런 문화에서는 아내구타를 폭행으로 이해하기보다는 훈육의 한 방법으로 이해하는데, 명태와 여자는 두들겨야 맛이 난다는 이런 문화를 잘 반영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정폭력을 조사한 많은 학자들 역시 한국사회의 가부장적 문화를 가정폭력의 중요한 원인으로 보고 있다(김광일 1987). 남성들이 사회생활에서 경험하는 개인적 좌절과 긴장 때문에 가정에서 폭력을 사용하는 경향이 더욱 빈번하게 나타나긴 하지만, 이런 상황에 처한 모든 남성들이 모두 그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들 중 특히 가부장적 경향이 강한 남성들이 가정폭력을 더 많이 행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므로 가부장적 성향이나 태도가 사회생활에서의 좌절과 긴장보다 가정폭력에 영향을 미치는 더 중요한 요인이라고 하겠다. 가부장적 문화에 기인한 가정폭력을 강조하기 위해 Johnson(1995 : 284)은 여성에 대한 폭력을 일반 부부폭력과 가부장적 테러행위로 구분하였다. 일반 부부폭력은 부부 상호간에 폭력이 교환되는 것으로 폭력 횟수가 적고 그다지 난폭하지 않은 반면, 가부장적 테러행위는 언제나 남성이 주도하며, 폭력사용 횟수가 많을 뿐만 아니라 난폭한 것으로 남성이 여성을 통제하고 지배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다. 전자는 비여권론적 이론으로 설명이 가능하지만 후자를 위해서는 여권론적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이론은 가정폭력의 근본적인 원인을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에서 찾는다. 그 예시로, 제3세계의 심각한 사회적 불평등과 비민주적 사회구조는 경제적 빈곤과 불안정한 삶을 야기하고, 여기서 생긴 좌절과 절망감이 가정생활에도 전가되어 가정폭력이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 차원의 노력만으로는 가정폭력을 근절할 수 없고 사회구조적 변화가 있어야 가정폭력을 해소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가정폭력은 자본주의 국가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국가에도 존재하며, 자본주의 국가 내에서도 가정폭력의 발생 정도는 그 사회의 문화에 따라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Steinmetz 1987 : 733). 따라서 자본주의 그 자체가 가정폭력의 원인이라기보다는 사회불평등 정도, 사회의 민주화 정도, 계층이동의 경직성 등과 같은 요인이 가정폭력과 관련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가족사회학의 현대사회와 가정폭력 부분을 검토해 본 결과, 현대사회에도 가정폭력은 여전히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었지만, 이들의 원인은 단순하게 파악할 수 없으며 특정 이론만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정폭력의 원인을 폭행 가해자나 폭행 피해자의 생물학적·정신적 결함에서 찾는 개인 내적 이론은 개개인에 대한 미시적인 설명은 할 수 있으나, 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문제를 설명하는 사회심리적·사회문화적 요인보다 미흡하다고 느꼈다.
가정폭력의 원인을 설명하는 많은 사회문화적 이론들 중 특히 많은 설득력을 지닌 것은 남성의 가부장적 의식을 강조하는 여권론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현대사회의 여권신장과 관련이 깊다.
가부장제(家父長制)는 가족의 중심을 가장과 가장의 상속권한이 있는 장남 위주로 가정이 운영되는 형태의 가족 제도를 말한다(위키백과). 이를 더욱 전통적인 시각에서 좁게 분류한다면, 가부장제란 부계(父系) 가장(家長)의 권위에 의해 존속되는 가족 제도를 말하게 된다. 가부장제는 가부장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가정 형태로 다른 가족 구성원의 발언이나 권한이 상대적으로 가장과 장남에 비교하여 취약하다. 가정 경제는 가장이 주관한다는 점에서 비롯되어 이외의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처와 자녀들이 가지게 되는 예속적 지위 등 불평등한 신분적 지배관계를 유발한다. 이와 같이 가장이나 장남위주 즉, 남성위주로 돌아가며 처와 자녀의 불평등한 신분적 지배관계의 특성을 갖고 있는 가부장적 의식은 현대에 들어 빈번히 침해당할 수 있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와 교육기회 증대로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남성보다 더 높아지는 비율이 과거에 비해 현저히 높아졌기 때문이다. 또한, 과거에 남성들이 대부분 경제적 지원을 해왔던 경우와 달리 현대사회의 여성들은 경제적 자립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부장적 의식을 버리지 못한 채 남성위주의 체제에 젖어있는 타성 역시, 만연한 가정폭력을 설명하는 설득력 있는 요인이라 생각한다.
3. 결론
가정폭력은 현대에 들어 새로이 생겨난 사회문제가 아니다. 단지, 전체적인 사회의 의식 성장과 더불어 이에 대한 것을 문제점으로 인지하고 해결을 위한 연구 대상으로 삼고 있는 뿐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정폭력은 없었던 적은 없다. 많은 법전과 속담이 이러한 사실을 말해주고 있고, 이는 현대사회의 많은 가정에서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가정폭력의 원인을 설명해주는 이론은 크게 세 가지로 살펴보았는데, 이들은 각각 개인 내적 요인, 사회심리적요인, 그리고 사회문화적 요인이다. 하지만 모든 사회이론이 완벽할 수는 없듯이, 각각 이론들은 가정폭력의 이유를 부분적으로는 설명할 수 있을지 몰라도 모든 면을 두루 규명하지는 못한다.
따라서 이들 이론을 개별적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이어지는 바와 같이 다각적인 관점에서 수용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폭력을 용인하는 사회의 구성원인 가부장적 의식의 가장은 사회적으로 겪은 좌절과 욕구불만 상태에서 가정에 폭력을 휘두르게 될 확률이 높다. 이것이 빈번히 실현되는 가정의 가족 구성원으로 자라난 어린이는, 성장 과정에서 폭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자주 접해 결국 폭력을 문제해결의 수단으로 학습하게 될 것이고, 이 같은 가정폭력은 대물림되기 쉬운 악습이 될 가능성이 높다.
위의 관점은 좌절공격이론, 사회학습이론, 문화이론, 여권이론 등을 모두 포함하는, 가정폭력의 원인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것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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